과거 우리나라 공교육의 영어교육 출발시기는 중학교 1학년이였습니다. 하지만 다수 가정의 사교육을 통한 조기교육으로 같은 중학생이라도 영어실력의 편차가 극명하게 갈리곤 했습니다. 저 또한 중학교 입학과 동시에 알파벳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십수년이 흘렀지만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은 그 해 중간고사 시험에 '알파벳 대문자 Q에 해당하는 소문자를 고르시오.'라는 시험문제가 나왔고, q와 p가 너무나 헷갈려 오답을 선택한 추억아닌 추억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 같이 사교육 없이 입학한 학생에게는 헷갈릴 수 있는 문제지만 영어 사교육을 받고 온 친구들에게는 코웃음나는 문제였습니다.
이처럼 영어는 사교육에 의해 수준차가 극심하게 벌어지는 과목입니다. 영어교육이 시간이 갈수록 중요해서이기도 하지만 수준차를 줄여보고자 국가에서는 영어교육 도입시기를 6학년, 5학년, 4학년, 3학년으로 앞당겼고, 지금은 정식교과로는 초등학교 3학년, 방과후시간로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영어교육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아이보다 뒤쳐지는 것에 대한 학부모의 우려로 인해 영어 교육시기가 더 빨라지고 있습니다. 5세, 4세, 3세, 그러다가 영어와 국어를 동시에 지도하는가 하면 심지어 태교를 영어테이프로 하는 부모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너무 이른 영어 조기교육은 아이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간과하고 있는 듯합니다.
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와 같은 논제로 '사고가 언어를 지배하는가, 언어가 사고를 지배하는가'에 대한 논란도 학계에서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영어 조기교육의 문제를 지적하는데 왜 이런 얘기를 꺼내느냐?
언어가 사고를 지배하는지 사고가 언어를 지배하는지는 확언할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언어가 있기에 우리가 좀 더 고차원적인 사고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말은 즉, 영어조기교육으로 '영어'를 좀 더 잘할 수는 있겠지만 그로 인해 창의적이고 논리적인 사고의 원동력이 되는 언어사고력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조기영어교육이 반드시 영어를 잘한다는 결과를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한가지 언어를 잘한다는 것은 발음,어휘력,의사전달능력,이해력 등 종합적인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이상하게도 '발음'한가지로 영어를 잘한다, 못한다를 구분하는 것 같습니다. 이는 우리나라 성인들이 충분히 영어를 할 수 있음에도 발음이 좋지 않기 때문에 영어회화를 기피하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영어 조기교육이 '발음'에 있어서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더라도 그 외적인 요소는 성인이 된 이후에도 얼마든지 습득할 수 있습니다. 또한 초등학교 입학시기에 영어교육을 시켜도 충분히 발음을 구사할 수 있으며, 오히려 너무이른 영어식 발음의 습득은 한국어 발음에 지장을 초래하기 때문에 부정적일 수 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도 여러번 언급했을 정도로 한국의 교육열은 대단하다. 특히 영어에 대한 교육열은 무서울 정도다. 실제로 어떤 느낌을 받았나?
▲한국의 교육열이 높은 것은 미국에서도 유명하다. 다만 시험을 위한 학업에 치중하는 면이 아쉽다. 한국의 부모들은 자녀교육에 매우 헌신적이지만 어디서나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아이가 사회성을 기른다거나 배움의 연장선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학교생활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요소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강제성에서 기인하는 교수법 때문에 배움에 흥미보다는 공포를 느꼈다. 또 영유아에 대한 영어교육 열기가 매우 높은 것을 보고 많이 놀랐다. 이것은 성인이 되면 언어를 습득하는 능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작용한 듯하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성인과 영유아의 언어습득률이 차이가 없다는 의미인가?
▲그렇다. 오히려 모국어를 자유롭게 하지 못하는 영유아가 외국어를 동시에 접하게 되면 혼란과 스트레스를 받게 돼 습득률도 자연스럽게 떨어진다. 반면 나이가 많을수록 지식과 언어이해력의 폭이 넓어지기 때문에 외국어 습득률은 영유아에 비해 높다.
-한국에서 인기가 높은 영어조기교육이 오히려 문제가 있다는 것인가?
▲영어조기교육이 문제가 아니라 영어교육방법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영유아, 혹은 어린이로 영어습득의 기간을 규정짓는 것은 어리석인 일이다. 모국어와 마찬가지로 외국어를 습득하는 방법이 효율적이다. 강제성이 없고 표현이나 의미를 이해 가능한 지점에서 편안하게 습득하는 것이다. 또 모국어를 기본적으로 잘 이해하고 구사한다면 외국어는 같은 방법으로 손쉽게 습득이 가능해진다. 언어는 강제성을 가진 교육으로 학습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주도적인 이해로 개별의 가치관을 가지는 것이다. 이것은 법칙이 아니라 자연적인 것이다.
-영어를 배우기 위해 어학연수를 떠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영어를 배우기 위해서 혹은 영어능력 향상을 위해 어학연수나 유학을 떠나는 것은 효과적이지 않다. 누가 어디에 있든지 간에, 즐거움이 가득하고 이해가 가능한 외국어로 된 소재들에 주도적으로 노출이 된다면 모국어처럼 자연스러운 습득이 이뤄진다. 발음을 내서 읽을 수 있도록 조금만 도와주면 된다. 외국어를 습득하는 것은 열심히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다. 학문으로써의 접근이 아니라 즐거움으로서의 접근이다.
과한 적은 부족한 것만 못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영어교육이 딱 그 모양입니다. 세계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모국어보다 외국어를 먼저 가르치는 나라는 없습니다. 대한민국이 유일한 국가이며, 심지어 발음 좋아지게 하는 유아기 설소대수술까지 시키는 영어에 미친(?) 나라입니다.
저는 영어가 필요없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 시기가 필요 이상으로 앞당겨져 있고, 이는 자칫 잘못하면 우리 아이들의 미래에 필요한 언어사고력을 앗아가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결국 지금의 영어교육은 '조기교육'이 아닌 '적기교육'이 필요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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