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설화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국민설화입니다. 그런데 그 국민설화가 자칫하면 사라질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완전한 허구로 밝혀질 위기에 처했습니다.
서동요는 삼국유사 무왕조에 나오는 설화로,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인 선화공주를 연모한 서동(무왕)이 밤마다 선화공주가 서동 방을 드나든다는 '서동요'를 퍼뜨려 선화공주와 결혼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삼국유사 무왕조에 나오는 미륵사 창건 설화입니다. 삼국유사에는 무왕이 왕후와 함께 용화산 못가를 걷고 있을 때 미륵삼존이 못에서 나탄나자 왕후가 큰 사찰을 지어달라고 부탁한 것을 무왕이 들어줬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삼국유사에 나오는 무왕과 왕후의 미륵사 창건 설화가 허구라는 결정적 단서가 발견된 것입니다. 이 단서가 발견되기 이전부터 이미 서동설화는 그 내용이 허구성이 짙다는 주장이 제기되었습니다. 백제 역사상 신라와 가장 적대적인 관계에 있었던 무왕이 원수국의 딸인 선화공주에 결혼했다는 점, 계속되는 전쟁 중에 신라 공주와의 혼인과 미륵사와 같은 대규모 사찰 건축이 가능했을까라는 의혹이 제기되었던 것입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얼마전 독서를 하던 중 2009년 삼국유사에서 무왕이 선화공주의 부탁을 받아들여 지었다는 미륵사지 석탑의 복원을 위해 해체작업 중 국보급 유물들이 탑의 중심부에서 발견됐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야기를 계속하자면 국보급 유물 중 가장 주목을 받은 것은 바로 미륵사 창건에 관한 기록이 적힌 금제사리봉안기였습니다. 먼저 금제사리봉안기의 원문을 옮겨봅니다.
결국 중요한 문장은 미륵사지 석탑을 639년 좌평 사택적덕의 딸인 백제왕후가 세웠다라는 것입니다. 그동안 꾸준히 제기되어 오던 서동와자와 선화공주의 국경을 뛰어넘는 사랑이야기의 허구설에 날개를 달아준 격이 되었습니다.
서동요는 삼국유사 무왕조에 나오는 설화로,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인 선화공주를 연모한 서동(무왕)이 밤마다 선화공주가 서동 방을 드나든다는 '서동요'를 퍼뜨려 선화공주와 결혼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삼국유사 무왕조에 나오는 미륵사 창건 설화입니다. 삼국유사에는 무왕이 왕후와 함께 용화산 못가를 걷고 있을 때 미륵삼존이 못에서 나탄나자 왕후가 큰 사찰을 지어달라고 부탁한 것을 무왕이 들어줬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삼국유사에 나오는 무왕과 왕후의 미륵사 창건 설화가 허구라는 결정적 단서가 발견된 것입니다. 이 단서가 발견되기 이전부터 이미 서동설화는 그 내용이 허구성이 짙다는 주장이 제기되었습니다. 백제 역사상 신라와 가장 적대적인 관계에 있었던 무왕이 원수국의 딸인 선화공주에 결혼했다는 점, 계속되는 전쟁 중에 신라 공주와의 혼인과 미륵사와 같은 대규모 사찰 건축이 가능했을까라는 의혹이 제기되었던 것입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얼마전 독서를 하던 중 2009년 삼국유사에서 무왕이 선화공주의 부탁을 받아들여 지었다는 미륵사지 석탑의 복원을 위해 해체작업 중 국보급 유물들이 탑의 중심부에서 발견됐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야기를 계속하자면 국보급 유물 중 가장 주목을 받은 것은 바로 미륵사 창건에 관한 기록이 적힌 금제사리봉안기였습니다. 먼저 금제사리봉안기의 원문을 옮겨봅니다.
가만히 생각하건데,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셔서 중생들의 근기에 따라 감응하시고, 중생들의 바람에 맞추어 몸을 드러내심은 물속에 달이 비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석가모니께서는 왕궁에 태어나셔서 사라쌍수 아래에서 열반에 드시면서 8곡의 사리를 남겨 3천 대천세계를 이익되게 하셨다. 그러니 마친내 오색으로 빛나는 사리를 7번 요잡하면 그 신통변화는 불가사의할 것이다.
우리 백제 황후께서는 좌평 사택적덕의 따님으로 지극히 오랜 세월에 선인을 심어 금생에 뛰어난 과보를 받아 만민을 어루만져 기르시고 불교의 동량이 되셨기에 능히 정재를 희사하여 가람을 세우시고, 기해년 정월 29일에 사리를 받들어 맞이했다. 원하옵나니, 세세토록 공양하고 영원토록 다함이 없어서 이 선근을 자량으로 하여 대왕폐하의 수명은 산악과 같이 견고하고 치세는 천지와 함께 영구하여, 위로는 정법을 넓히고 아래로는 창생을 교화하게 하소서. 또 원하옵나니, 왕후의 신심은 수경과 같아서 법계를 비추어 항상 밝히시며, 금강 같은 몸은 허공과 나란히 불멸하시어 칠세의 구원까지도 함께 복리를 입게 하시고, 모든 중생들 함께 불도 이루게 하소서.
우리 백제 황후께서는 좌평 사택적덕의 따님으로 지극히 오랜 세월에 선인을 심어 금생에 뛰어난 과보를 받아 만민을 어루만져 기르시고 불교의 동량이 되셨기에 능히 정재를 희사하여 가람을 세우시고, 기해년 정월 29일에 사리를 받들어 맞이했다. 원하옵나니, 세세토록 공양하고 영원토록 다함이 없어서 이 선근을 자량으로 하여 대왕폐하의 수명은 산악과 같이 견고하고 치세는 천지와 함께 영구하여, 위로는 정법을 넓히고 아래로는 창생을 교화하게 하소서. 또 원하옵나니, 왕후의 신심은 수경과 같아서 법계를 비추어 항상 밝히시며, 금강 같은 몸은 허공과 나란히 불멸하시어 칠세의 구원까지도 함께 복리를 입게 하시고, 모든 중생들 함께 불도 이루게 하소서.
결국 중요한 문장은 미륵사지 석탑을 639년 좌평 사택적덕의 딸인 백제왕후가 세웠다라는 것입니다. 그동안 꾸준히 제기되어 오던 서동와자와 선화공주의 국경을 뛰어넘는 사랑이야기의 허구설에 날개를 달아준 격이 되었습니다.
또한 미륵사지 석탑 재정비 과정에서 발견된 사리봉안기가 시기적으로 삼국유사에 비해 더 오래되었으므로 선화공주의 존재가능여부가 떨어질 수 있다는 것과 오히려 선화공주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더불어 서동요또한 말에서 말로 전해지는 구전동요에 지나지 않았다는 설이 유력하게 되었습니다. 학계의 주장처럼 삼국유사에 실린 서동요의 가치가 그것이 역사적 사실이었다 아니다의 여부를 따라 결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내심 욕심이겠지만 사실이기를 바랬던 마음에 금이 가니 약간은 실망이 되는건 어쩔 수 없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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