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학생이라면 누구나 지옥같은 입시제도에 시달립니다. 한 번쯤 일탈의 유혹을 느끼지만 소극적인 반항도 하지 못한채 그 지옥의 사슬에 얽매어 12년이라는 시간을 끌려갑니다.

따지고 보면 학교폭력, 도덕성약화 등 청소년문제들의 근본적인 원인은 지나친 입시경쟁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교육을 책임지도 있는 교과부에서는 정작 입시제도에는 털끝만큼의 손도 대지 않은 채 '학교폭력상담사 배치, CCTV 강화, 학교별 일진공개, 학교폭력 생활부기록' 등 외적인 부분에만 손을 대고 있습니다.

그런 교과부에 회의를 느끼고 학교를 벗어나는 고등학생만 하루 평균 100명이라고 합니다. 어제 그 중 한명인 '최훈민' 군과의 인터뷰 내용을 보고, 어린 학생이지만 대한민국 교육의 현실을 잘 알고 있구나, 어렵지만 이런 사람이 교육의 한 축을 담당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래는 뉴시스에서 최훈민 군과 인터뷰한 내용입니다.

- 중요한 시기에 학교를 자퇴하게 된 이유는.
"입시경쟁에 대한 문제의식을 항상 갖고 있었다. 정보기술(IT) 특성화고에 입학한 것도 입시공부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학교도 일반 고등학교와 다를 바 없었다. 오히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다. 때마침 교육과학기술부에서 학교폭력 근절을 위한 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교과부는 문제의 본질은 제쳐둔 채 불필요한 이야기만 늘어놓았다. '더 이상 학교에 희망이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에 대한 회의감이 더해졌고 학생이 주체가 되는 학교를 만들고 싶은 욕심도 생겼다. 기존에 갖고 있던 입시교육에 대한 문제의식이 실천으로 옮겨질 때가 된 것이다."

- 정부가 무시한 문제의 본질은 무엇인가.
"교과부는 최근 학교폭력 근절을 위한 대책을 발표하면서 문제의 본질인 입시교육을 조금도 건드리지 않았다. 실효성 없는 복수담임제나 일진경보제 등만 내세웠다. 더구나 복수담임제는 이미 시행되고 있는 제도다. 하지만 누가 학급을 담당하고 있는지도 모를 만큼 제도적 의미가 없다. 일진경보제도 문제다. 일진이 탈퇴하면 폭력이 근절된다고 생각하는 건지, 일진이 있으면 미리 경보해주는 건지 실제로 적용이 불가능하다. 말도 안되는 대책으로 여론을 호도하고 있는 것이라 볼 수 밖에 없다. 사실상 이는 학교폭력 문제를 진단한 것이 아니다. 이밖에도 여성가족부는 폭력적인 게임 때문에 이같은 문제가 불거졌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청소년들의 게임 접근성 또한 제한했다. 물론 게임이 학교폭력 중 하나의 원인으로 작용할 수는 있다. 하지만 본질적인 원인이 될 수는 없다. 일부 언론에서는 폭력적인 웹툰이 문제라고 했다. 그렇지만 실제로 지적을 받고 있는 웹툰은 이미 청소년은 볼 수 없도록 제한돼 있던 것이다. 결국 입시교육으로 인해 발생한 문제를 외딴 곳에서 찾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입시교육이 학교폭력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입시교육이 학교 친구들을 더 이상 동료가 아닌 경쟁자로 만들어버렸다. 친구가 어떤 문제에 대해 질문을 했을 때 선뜻 거리낌 없이 가르쳐 줄 수 있는 학생이 얼마나 될까. 결국 학생들은 반복된 경쟁과 평가에 따라 상중하로 등급이 정해진다. 하위권 학생들은 학교에서 패배자로 낙인 찍히고, 상위권 학생들과 비교를 당한다. 이 과정에서 피해의식과 마찰이 생길 수밖에 없다. 결국 학교 내 성적차별로 인해 학생들 사이에서 계층이 형성되는 것이다. 이 때 상위권 학생들보다 신체적 조건이 우월한 하위권 학생은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서 폭력적인 행동을 취하기도 한다. 이로써 학교폭력이 시작되는 것이다. 폭력은 서로의 인권을 존중하지 않기 때문에 생긴다. 학교는 학생 개개인의 인권과 길을 존중해주는 사회가 아니다. 성공과 패배의 길로 나눈다. 결국 학생들은 이 같은 환경에서 극단적으로 자랄 수밖에 없다. 학교폭력은 전면적으로 입시교육 때문에 발생한다."

- 경쟁과 평가 자체를 거부한다는 의미인가.
"물론 공산주의, 사회주의로 가자는 뜻은 아니다. 학업에 대한 평가와 동료 간 경쟁은 필요하다. 다만 각자의 길을 존중해 주는 선에서 경쟁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시험 하나만으로 모든 것을 좌지우지해선 안된다. 시험 자체의 문제는 없다. 등급을 매기기 위한 시험이 돼버리는 것이 문제다. 학교는 학생들의 정신건강을 돌보기는 커녕 오히려 비교를 통해 패배의식만 심어주고 있다."

- 부모들이 자녀에게 거는 기대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다른 아이들과 비교를 하는 부모들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시험 점수가 낮다고 해서 자녀한테 '너는 패배자', '인생 그렇게 살지마'라고 말하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학교에서는 실제로 '너희 대학 안갈래' '그러다 지잡대 간다' '지잡대 가면 인생 망쳐' 등 막말을 하는 선생님들이 수두룩하다."

- 자퇴를 결심하고 새로운 학교 설립까지 목표로 삼았다. 주위의 반응은 어땠나.
"부모님도 입시교육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끼고 계셨던 터라 무작정 반대하시기 보다는 내 입장을 잘 이해해 주셨다. 이왕 시작한 거 열심히 해보라고 격려도 해주셨다. 방법론적인 차이는 있지만 내 의견에 공감을 해주는 분들도 많았다. 입시교육이 잘못됐다는 사실 만큼은 어느 누구도 부정하지 않았다. 공적으로 노출을 시킨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나만의 문제이기 보다는 모두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청소년 행복지수 최하위, 하루에 고등학생 100여명 자퇴 등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해결 의지가 없다는 사실을 모두에게 알려줄 필요가 있었다. 단순히 정보 차원에서 그치지 않고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과 새로운 학교도 설립하고 싶다."

- 최군이 앞으로 꿈꾸는 학교는.
"정확한 학교 명칭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가칭 '희망의 우리학교'로 이름 지었는데 여기서 '우리'는 누구에게나 열려있다는 의미다. 다만 선생님이 없는 학교를 추구한다. 선생님의 자격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는 얘기다. 학생들도 잘 아는 부분이 있으면 다른 학생들과 공유할 수 있고 학습 방법도 강습과 여행, 인턴십 등 다양하게 진행할 예정이다."

 

- '우리학교'의 학생상은.

"주체적으로 배우려는 학생이다. 학교에서 학생에게 강요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본인이 배우고자 하는 것을 주체적으로 진행하면 된다. 학교 입학자격 또한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학생이 학교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갖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여러 갈래의 길 중에서 학생이 자신과 맞는 학교를 선택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졸업자격은 저명있는 전문가들의 추천서를 받는 것으로 대신할 예정이다."

- 정규 교과과정을 밟은 학생과 우리학교 졸업생이 있다. 사회가 요구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학벌과 스펙, 봉사활동 시간, 어학연수 등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사장이라면 실제로 이 친구가 그동안 '우리학교'에서 어떤 체험 활동을 해왔는지 눈여겨 볼 것이다. 오히려 전자보다는 후자가 더욱 진실성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 소설보다 자기소개서 쓰기가 더 어렵다고 한다. 아무리 자기소개서를 잘 써봐야 그건 진짜가 될 수 없다."

- 소위 말하는 스카이(SKY) 학생들이 공개적으로 학교를 자퇴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지방대나 전문대 학생들이 같은 이유로 자퇴를 선언한 경우 큰 반향이 나타나진 않는다. 이유가 뭘까.
"후자의 경우 그동안 사회적으로 많은 억압을 받아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그들은 질이 나쁘거나 범죄를 저지른 이들이 아니다. 그저 수치상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평가받아왔기 때문에 이같은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나 생각한다. 실제로 전문대생이 나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자퇴를 했을 수도 있다. 다만 언론에서 다루지 않았을 뿐이다. 이것도 하나의 사회적인 편견일 수 있다. '공부를 못해서' '인생 망해서'라는 앞선 판단으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것이다."

- 또 다른 꿈이 있다면.
"IT(정보기술)쪽을 계속 공부해 왔으니까 이와 관련한 직업을 갖고 싶다. 하지만 직업은 생산적인 일을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일을 위한 일을 맹목적으로 하는 것은 돈을 댓가로 일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어릴 때부터 꿈꿔왔던 프로그래머라는 직업이 사회적으로 의미있게 쓰이는 도구가 됐으면 한다."

에버레트 라이머의 '학교는 죽었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현대 사회의 학교교육제도 및 기관은 인간을 위한 제도 및 기관이 아닌 인간을 지배하게 되는 제도 및 기관이 되어버렸고, 거기에 종속되어버려 모든 관계와 구조가 재생산 되고 있을 뿐이며, 특권층은 자신들의 특권을 더욱 더 공고화 시키고 있을 뿐이라는 큰 틀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계속되는 교과부의 입시경쟁적 제도는 학교 뿐만 아니라 학생까지도 죽이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쟁이 없을 수는 없지만 학생들이 가고자 하는 길을 오직 '점수'라는 한가지 항목으로 결정하는 교육제도, 미비하지만 그들에게 조금의 경각심을 일깨워준 학생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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