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시상대에 오르고도 고개 숙인 두 선수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그당시 육상의 꽃이였던 마라톤에서 금메달과 동메달을 쥐었습니다. 이들의 비장한 인상을 관중은 의아해하였습니다. 시상대에서 이들은 결코 기뻐할 수 없었습니다.

독일 베를린 올림픽 메인스타디움에는 자신들의 조국을 식민지로 만든 일본의 국가가 우승자를 위해 연주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고개를 숙여 계양대에 솟아오르는 일본 국기를 외면하였습니다.

훗날 동메달리스트였던 남승룡 선수는 금메달리스트였던 손기정 선수가 부러웠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금메달이 부러운 것도 아니요, 세계기록이 부러운 것도 아니였습니다. 바로 손기정 선수가 가지고 있던 우승 기념품인 참나무 묘목이였습니다. 손기정 선수는 그것으로 가슴팍에 붙인 일본 국기를 가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장기 말소 사건은 20,30대 이상이시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건일 것입니다. 1936년 8월 독일 베를린에서 개최된 제 10회 올림픽의 마라톤경기에서 조선인 손기정 선수와 남승룡 선수는 각각 금메달과 동메달을 차지하여 전국은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습니다.

한국 시각으로 1936년 8월 9일 밤 11시에 시작된 마라톤의 결과를 시민들은 신문사 속보판 앞에서 밤을 세우며 초조하게 기다렸습니다. 비록 가슴에는 일장기를 달았지만 일제에 의해 발가벗겨진 조선땅에 손기정 선수의 우승 소식은 하나의 희망이자 위로가 되어주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다음날 <동아일보>에는 손기정의 가슴에 있던 일장기가 말소된 채로 손기정 선수의 우승 사진이 8월 25일자 <동아일보> 신문에 보도되었습니다.

<동아일보>에서는 손기정 선수의 사진을 입수하여 신문에 게재하기로 결정했고, 당시 <동아일보>의 체육담당 이길용 기자가 사진담당 백운선 및 제판담당 강대석과 의논하여 사진 동판을 만들 때 초산을 약간 강하게 사용하여 일장기를 일그러 놓고, 삽화담당 이상범으로 하여금 수정을 가하게 했습니다.

이에 분노한 총독부는 26일 <동아일보>에 무기정간처분을 내리고 편집국을 급습하여 일장기 말소사건에 가담한 인물들을 구속하였습니다.

이로써 '민족언론지'라는 명분을 얻었고 지금까지도 우려먹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일장기 말소사건의 전말입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일장기를 말소하여 손기정의 사진을 내보낸 것은 <동아일보>가 최초가 아니고 <조선중앙일보>였습니다. <조선중앙일보>의 유해붕 기자는 8월 13일자 신문에 손기정 선수의 사진에서 일장기를 말소하여 게재하였습니다. 당시, <조선중앙일보>의 체육부장 유해붕은 양정고보 육상부 출신으로 손기정의 선배였습니다. 함께 땀을 흘리며 달리던 후배가 머나먼 타국에서 키도 크고 체격도 월등히 좋은 서양인들을 제치고 금메달을 땃다는소식을 들은 선배는 차마 일장기를 그린채 신문을 낼 수 없었던 것입니다.

 

또한, 손기정의 사진에서 일장기가 말소된 것은 <동아일보>의 이길용, 백운선 기자 등에 의한 결정이지 <동아일보>의 경영층이나 상층부에서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사건발생 직후 <동아일보>의 사장 송진우는 "성냥개비로 고누거각을 태워버린 행동"이라며 미나미 총독 및 조선총독부 고관을 지낸 일본인들의 모임 '조선중앙협회'에 가서 조속한 정간 해제 요청을 구걸하였습니다.

송진우는 젊었을 적 주권을 빼앗긴 현실에 분노하여 항일운동을 펼쳤다고 알려져있습니다. 그리고 3·1 운동 때는 민족대표 48인의 한 사람으로 서명하여 1년 반의 옥고를 치렀으나 알려진 바와 달리 3·1 운동을 적극적으로 이끈 분은 한용운 선생 이외 서너명 뿐이었고 나머지는 소극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송진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고 이후에는 친일행적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네이버 등에서는 송진우가 일장기 말소사건 때 보여주었던 행동이나 말은 전혀 언급하지 않고 독립을 위해 한평생을 바친 독립운동가로 평가해두었습니다. 아무래도 그 후손들이나 <동아일보> 기득권을 쥔 자들에 의해서 그의 친일적 행각들이 의도적으로 숨겨진 듯합니다. 심지어 고하 송진우 선생 기념 홈페이지에서는 김구 선생을 감성적 이상론자로 치부하고 있었습니다.

(도서 : 사라진 일장기의 진실)


아직까지도 송진우가 친일파인지 독립운동가인지 구분하는데 혼란을 겪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가 말한 이 한마디는 도저히 독립운동가라고 생각할 수 없을 듯합니다.

"사의 의사와 관계없이 일 기자의 독단으로 저질렀다는 것이 조사에 의해 분명해진 일이다. 금후부터는 더한층 근신하여 다시는 이와 같은 불상사를 일으키지 않도록 주의할 것은 물론이어니와, 지면을 쇄신하고 대일본제국의 언론기관으로서 공정한 사명을 다하여서 조선 통치의 익찬을 기할 것이다."

아직도 일장기 말소사건과 송진우의 친일 또는 독립운동가에 대한 논란은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또한 명확히 논란을 잠재울 만큼 사료적 근거가 부족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국가적, 국제적 역사왜곡이 판치는 이 세상에서 적어도 역사에 대해 알고 탐구하려는 마음이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닐까요?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