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지만 워낙 방대한 양에 지레 겁을 먹고 지금쩍 읽지 못한 책이 있습니다. 바로 조정래씨의 '아리랑'입니다. 오늘은 문득 읽다가 평소에 나도 몰랐던 생각을 갖게 하는 부분이 있어 감히 그 대목을 짤막하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모르겠네. 오랜만인데 저기 가서 술이나 한잔하세.」 
「빌어먹을, 탑골이라는 말 들으니까 어째 기분이 이상하군. 왜놈들 참 못된 놈들이야. 왜 동네 이름들까지 제멋대로 바꾸나그래. 낙원동이 뭐야, 낙원동이.」 
「흐흐흐흐. 그러지 말게, 총독님 치하가 좀 좋은 낙원인가. 술이나 마시자구.」 
허탁의 흐흐거리는 웃음이 소슬한 저녁바람 속에 흩어지고 있었다. 낙원동은 골목골목 술집 많기로 유명했다. 기생들을 둔 고급술집에서부터 싸구려 선술집까지 그 종류도 다양했다. 진고개가 일본사람들의 유흥가라면 낙원동은 조선사람들의 유흥가였다.

그렇습니다. 일제시대 일본사람들은 우리민족의 와해를 위해 신체적억압과 동시에 각종 민족말살정책을 펼쳤습니다. 창씨개명이 한국인 이름을 일본식으로 강제로 바꾸게 했다면 그와 유사하게 우리 국토의 이름인 지명까지도 마음대로 일본식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일제가 패망하면서 창씨개명으로 바뀌었던 인명은 본래 이름으로 되돌려졌으나 일제가 남긴 일본식 지명은 광복 60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까지 본래의 이름을 찾기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1987년부터 2003년까지 정비된 지명은 약 45곳 뿐이였고 2006년 대대적인 개편이후 뚜렷한 성과를 보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일본식 지명은 얼마나 되는 것일까요?
우리나라 땅이름 전문가이신 배우리씨 등이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아직도 우리나라 지명 중 30% 가량이 일본식 지명이라고 조사되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지속적인 개편으로 그 수치가 줄어들고 있지만 일제의 잔재가 남아 있는 지명을 너무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종로구만 예로 들 경우 넓은 다리라는 뜻의 너더리라는 이름이 청계천 흐름을 살핀다는 일본식 이름의 관수동으로 바뀌었고, 잣골이라는 순 우리이름도 숭교방의 동쪽이라는 뜻의 동숭동으로 변조됐으며, 회나무골 또한 의굼부가 있는 자리라 해서 공평동이라는 이름으로 둔갑했습니다. 또 수문골은 권농동으로, 옥방골은 예지동으로, 탑골은 낙원동으로, 상삿골은 원남동으로, 원골은 원서동으로 바뀌었습니다. 이 외에도 일일이 거론하기가 힘들 정도입니다. 다양한 사례와 자료는 사진과 링크로 첨부합니다.

                                                                <자료 참조 : 배우리 이름사랑>

일재의 잔재는 우리 생활 속에 깊숙히 박혀 있습니다. 저는 지명을 예를 들고 있지만 흥미로운 사례 하나를 들어보겠습니다. 학창시절 우리는 교실안에서 태극기를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그 태극기가 어디에 있던가요? 그렇습니다. 위 첨부한 사진의 상단에 해당하는 것처럼 액자 속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즘 관공서나 학교를 찾아보면 태극기가 액자형이 아닌 위 사진의 하단에 해당하는 것처럼 족자형(나무판 위에 태극기를 올려 놓은 것)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액자형으로 태극기를 게시하는 것이 일재의 잔재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2002년 정부가 액자형이 아닌 족자형으로 태극기를 게시할 수 있도록 지시하였으니 올바른 처사라고 할 수 있지요.

정부는 이런 세세한 사항까지 일제시대 잔재를 청산하려고 하지만 정작 그 많은 일본식 지명의 개명을 서두르지 않는 것일까요? 당연히 수많은 동명을 바꾸게 되면 엄청난 행정수요와 혼린이 야기되기 때문에 개명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 나라에 새로운 국토개발에 따라 새로운 도시, 아파트, 지하철역, 길 등 많은 시설물이들이 생길 것입니다. 그런 곳에 최근 관계 당국에서 역의 이름이나 길이름들을 지을 때 우리 토박이 땅이름으로 정하는 경우를 더러 볼 수 있습니다. 당연히 새로운 명을 필요로 할 테니 이런 곳에 반드시 우리 토박이 이름을 붙여 주어야 하고, 분구나 분동할 때 우리 고유의 땅이름을 되찾아 나아나가면서 기존의 일본식 지명을 조금식 개명해 나가야 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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